낙원 1 -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문학동네 |
낙원을 읽었다. 저녁밥을 먹고, 배 꺼지는 동안 조금만 읽어볼까 하고 읽었는데, 두권을 다 읽을 동안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난 전작격인 모방범을 읽을 때, 더 이상 이런 이야기는 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었다.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범인이 너무 무서웠고, 사람들이 죽어가는게 너무 싫었다. 그게 만일 나에게 일어났다면 하고 상상하니, 생각만으로도 너무 무서워서, 끔찍한 생각이야 내게 그런 일은 없을거야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ㅠㅠ
그래서 모방범에 너무 놀란 난, 낙원이 나왔을 때, 모방범 이후라는 글자만 보고도, 이 책은 안 읽을거야 하며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연찮게 낙원을 읽은 분에게서 전 모방범은 싫었는데, 낙원은 좋았어요,라는 한 마디를 듣고서, 모방범이 싫었던 건 나랑 같네, 그럼 나도 낙원을 한 번 읽어봐야지하고 내 태도를 바꾸게 되었다.
그랬다. 내게도 모방범보다는 낙원이 좋았다.
이 책에도 여전히 살인은 일어나고, 시체가 나오고, 가족을 잃은 사람이 나온다. 그래도 모방범만큼 끔찍하지만은 않다.
살인사건이 나오지만 이건 이유가 있었고, 내가 싫어하는 연쇄살인범도 나오지 않았다.
외아들을 잃었지만 슬픔에 침몰되지 않은 어머니 도시코도 좋았고, 그런 도시코의 슬픔을 이해하면서 부드럽게 대해주는 시게코의 태도도 좋았고, 졸지에 살인자 부모를 둔 세이코를 걱정하는 친구들의 태도도 따뜻해서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모방범을 읽으면서 상처받았던 내 맘이 치유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난 예전에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을 참회한다는 진언에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은 중요한 건데 왜 참회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예로 사람을 죽이는 건 절대적으로 옳지 않는 일이니깐 그른 일이라고 분별하는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카네의 죽음에, 죽어서 안됐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13계단』을 읽으면서 사형제도 폐지에 감화되던 내 마음도, 『모방범』이나 경기연쇄살인사건을 보면서는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것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거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처럼 시게코도 회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푸른하늘모임 사무국장 아라이의 말을 곱씹어보면서.
낙원에는 이런 일이 있었으니 우린 이렇게 해야한다고 해답 같은 건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문제를 던지고 우리는 고민하고 회의할 뿐이다. 정답 아닌 정답을 위해서.
이건 여담이지만, 내가 가는 도서관에는 김순조 기증문고라는 코너가 있다. 김순조옹이 기증한 책들로 채워진 책장인데, 김순조옹은 일본 오사카에서 공업소를 운영하며 거주하는데, 고향의 발전을 위해 매년 전문기술 서적과 일정 금액 일정 권수 이상의 책을 고향 도서관에 기증하여 주시는 분이다. 1991년부터 시작하셨으니 벌써 17년동안이다.
처음 이 분을 인지했을 때는 그냥 '이런 분도 있구나' 였다. 그 분이 기증하는 도서는 대부분 기술전문서적이고 베스트셀러를 주로 읽는 나랑은 그다지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도서관 출입이 잦아지면서,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17년동안 한결같이 기부해주시는 그 분의 모습에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그 분은 현재 일본에 거주하시는 분이다. 이곳이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현재의 자신의 삶의 터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 분은 자신이 살지도 않는 곳의 사람들을 위해서 매년 일정금액 이상을 기부해주신다.
난 정말 이 분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도 이 분을 본받고 싶어졌다. 지금 난 이 분 사진 옆에 내 사진도 걸리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은밀한 소망을 품고 있다 :)
그래서일까? 순수하게 좋은 취지로 설립된 건 아니지만, 그리고 잘못된 운영방침은 고쳐야겠지만, 그래도 난 푸른하늘모임이 완전히 와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푸른하늘모임의 도서실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있고 그곳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 중에는 언젠가는 자신도 커서 회사를 키우고,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이런 장소를 만들겠다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상하면 이 곳이 있는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