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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11월 17일

1.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을사년스럽다가 변해된 말이라는 걸 오늘 알았다.
105년 전 오늘이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이라는 것도.

2.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

 ★영국 기자 매켄지( Frederic Arthur Mckenzie)
"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 "중에서(Korea's Fight for Freedom)

나는 그들이 휴대하고 있는 총을 살펴보았다. 여섯 명이 가지고 있는 총 중에서 다섯 가지가 제각기 다른 종류였으며, 그 중에 하나도 성한 것이 없었다. 나는 의병들의 조직을 물어 보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사실상 아무런 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는 자기들이 어떤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음을 시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순간 5, 6명의 의병들이 뜰로 들어섰다. 나이는 18세에서 26세 사이였고, 그 중 얼굴이 준수하고 훤칠한 한 청년은 구식 군대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나머지는 낡은 한복 차림이었다. 그 중 인솔자인 듯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들이 최근에  전쟁을 한 것은 언제였습니까?

오늘 아침에 저 아랫마을에서 전투가 있었소. 일본군 4명을 사살했고, 우리측은 2명이 전사했고 3명이 부상을 입었소.

이상하군요. 두 배 이상의 전과를 올렸는데 왜 쫒겨 다니고 있습니까?

일본군은 무기가 우리보다 훨씬 우수하고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정규군이오.. 우리 의병 2백명이 일본군 40명에게 공격 당해 패배한 적도 있을 정도요.

일본군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소. 우리는 어차피 싸우다 죽게 될 것이요. 그러나 어찌 되든 좋소!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오. 헌데 한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소?

말씀하십시오.

우리 의병들은 말할 수 없이 용감하지만 결정적으로 무기가 없소. 총은 낡아 쓸모가 없고 화약도 거의 떨어졌소. 당신은 원하면 아무 곳이나 다닐 수 있는 사람이니 우리에게 무기를 좀 사다 주시오. 돈은 5천 달러건 만 달러건 요구하는 대로 드리겠소.

안타깝게도 나는 이 요구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종군기자로서 어느 한 쪽에 이익을 제공하는 것은 기자 윤리상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보다는 일본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한국을 돌아본 결과 내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일본군은 양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비인도적인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비겁하지도 않고 자기 운명에 대해 무관심하지도 않았다. 한국인들은 애국심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료 펌 출처] : http://www.chungdong.or.kr/middroom/syshim/%ED%95%9C%EA%B5%AD%EC%82%AC/%ED%95%9C%EA%B5%AD%EC%82%ACb-26.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