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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그건 정말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하트의 전쟁 - 8점
존 카첸바크 지음, 권도희 옮김/에버리치홀딩스

얼마 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5·16을 두고 “돌아가신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이라는 발언을 했고, 그 후 여야에서 박근혜 의원을 질타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5.16 군사 쿠데타, 3선개헌, 유신헌법, 12·12사태, 전두환 군사정부로 이어진 그 긴 세월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불가피한 최선을 선택해서 이루어낸 결과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민주화 투사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반독재투쟁을 하며 목숨을 잃었고 고난의 세월을 보냈던가?
단 한 사람의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근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살인을 했다.
한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일 뻔했고, 또 다른 살인은 1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책에서 내가 석연치 않았던 건 사실 살인이 아니라, 살인 그 이후의 일이다.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그들의 살인은 정당방위의 일종일 수 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내가 죽인 건 아군이 아니라 적이다. 거기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살인의 뒤처리는 정말 꺼림칙한 방식이었다. 
불리한 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내 죄를 무고한 약자에게 태연히 뒤집어씌우고, 진실을 수호해야 하는 사람들은 절박한 눈앞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감춘다.
이런 각자의 선택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전쟁이 빚어낸?

작가는 인종차별, 거짓 속에서 진실 찾기, 역경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를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고, 죽은 자만 빼면 모두가 만만세인 결말임에도, 내 기억에 남은 건 자신의 보위를 위해 태연히 남을 희생시키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은 인간의 비열함뿐이다.

그러나 이런 씁쓸한 뒷맛에도 별 네 개를 주는 것은, 700여 페이지를 단숨에 읽게 하는 작가의 날렵한 글솜씨에 감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