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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경주여행 - 괘릉, 영지석불

여행날짜 : 2013.9.6.

자, 석굴암 다음 코스는 괘릉이다. 괘릉에 가려면 일단 불국사에서 다시 10번을 타고 가다, 불국사역에서 내려, 맞은편 정류장에서 600번대의 버스를 잘 살펴보고 타야 하는데, 아뿔싸, 멍때리다 내려야 할 곳을 놓쳤다. 한참 지나가다, 친구가 우리 어디서 내리냐고 물어봐서, 불국사역이라고 대답했다가 내릴 곳을 놓쳤다는 걸 알았다. 한순간, 멘붕. 우리 어디로 가, 어떻게 가?

이때 친구가 버스 노선도를 보더니 재치있게 통일전으로 가자고 했다. 통일전 앞에 카페가 있는데 거기서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차리자며. 그래서 일단 괘릉을 뒤에 두고 통일전으로 갔다. 친구 기억상의 통일전 앞 카페는 어묵을 파는 어묵전이었다. 물론 식사도 할 수도 있고, 커피도 마실 수 있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어묵을 먹으니, 내 불찰로 인해 여행궤도에서 벗어났기에 우울했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통일전에서 11번 버스를 타고, 이번에는 불국사역에 정확히 내려 다음에 탈 차를 기다리니 버스가 뿅하고 나타났다. 진짜 이 날 버스운만큼은 신기하게 좋았다. 날씨는 비가 와서 돌아다니기 힘들었는데, 버스만큼은 짜증나지 않게 금방금방 와 주었다.^^

괘릉은 신라 하대 원성왕의 무덤이다. 그렇다면 신라 하대가 뭐고, 원성왕은 누구인가?

여기서 잠시 국사노트를 살펴보면, 삼국사기는 신라를 세 시기로 구분하는데, 박혁거세부터 진덕여왕까지 상대, 태종 무열왕부터 혜공왕까지 중대, 그리고 선덕왕부터 마지막 경순왕까지를 하대라고 한다.

중대는 왕권이 강한 시기였고, 하대는 왕권이 약한 시기였는데,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김헌창의 난은 신라 하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귀족의 난이다. 그리고 짜잔, 여기서 원성왕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원성왕 김경신이 바로 김주원과의 왕위쟁탈전에서 승리하고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원성왕릉은 신라 하대 무덤의 완성형으로 여겨진다. 상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는 평이다.





무덤의 경계를 알려주는 화표석

서역인 아저씨로 유명한 무인상


중국인 아저씨라는 추측이 있는 문인상

그리고 둘레돌인 십이지 호석

호석은 방위도에서 보는 순서와 같이 배열되어 있다.

괘릉을 괘릉이라고 하는 이유는, 물이 많아 괘를 걸어 능을 만들었다해서 괘릉이라고 한다고 한다. 여기서 친구가 내게, 물이 많은 자리는 묘자리로 안좋다고 하는데, 왜 여기에 무덤을 썼냐고 물었다.
헉 이런 어려운 질문을 내게 하다니...
그 자리에서는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는데, 나중에 책에서 읽으니, 물이 많아 묘자리가 안좋다 이런 건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풍수지리설은 고려시대부터 유행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고적한 왕의 무덤에 안녕을 고하고, 다음 장소인 영지석불좌상과 영지못이 있는 곳으로 갔다.
괘릉과 영지입구는 버스 한 코스로 걸어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날씨도 험하고, 차가 속도를 높여 쌩쌩 달리는데 비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은 좁아 위험할 것 같아서 그냥 버스를 탔다.

영지못은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김대성은 불국사를 창건할 당시 뛰어난 석공으로 백제인의 후손인 아사달을 초빙했는데, 오랜 세월 남편과 떨어져 있던 아사녀는 남편이 그리워 옛 백제땅에서 이곳까지 온다.
먼 길을 왔지만, 불국사 주지는 부정탄다고 아사달과의 만남을 극구 만류하며, 아사녀에게 탑이 완성되면 탑의 그림자가 영지못에 비칠 거라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한다.

영지못에서 이제나저제나 탑의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리던 아사녀, 그러나 끝내 그림자는 비치지 않고, 아사녀는 기다림에 지쳐 못에 몸을 던지고 만다.

석가탑을 완성하고 난 뒤 이 소식을 들은 아사달은 뒤늦게 아사녀를 찾아왔지만, 못가에 아사녀의 신발만 보이고, 아사녀는 이미 불귀의 객.
그리하여 영지석불좌상을 만들고는 아사달 또한 영지못으로 뛰어들고 말았다는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지못을 보지는 못했다. 영지석불좌성은 봤는데, 영지못은 좀 더 걸어내려가야 할 것 같아, 일정이 바빴던 우리는 깨끗하게 포기하고 말았다.

맑은 가을 날, 저 멀리 토함산 불국사가 비친다고 하는데, 난 정말 비칠까 의심스러웠다. 이렇게 먼 데, 정말 비친다 말이지? 정말?


영지석불은 얼굴이 없다. 훼손된 건지, 원래 안만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부처님의 얼굴이 없는 건 불자로 하여금 자신의 얼굴을 투영시켜 보라고 그런 것 아닐까, 내가 곧 부처다하며, 심신을 도야하기를 바란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영지입구로 걸어나오는데, 친구가 저 멀리 풍력발전소가 보인다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날개를 보고 있자니, 난 과거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저 곳엔 미래가 있는 것 같아 왠지 모를 감회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