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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대구여행 - 첫째날

일시 :  2013. 11. 29.
누구랑 : 선이랑

겨울이면 언제나, 늘, 나를 시름들게 하는 김장이 끝났다.
해남배추, 간이 딱 맞는 짜지 않는 김치라는 엄마의 미련의 9포기가 남았지만,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고. 내 일의 팔할은 끝났어요가 되니, 몸이 근질거렸다.
김장 준비하는 기간 동안 운동을 제대로 못해서 더 욕구불만인 상태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해서 부랴부랴 선에게 연락. 만나기로 했다.
이번 행선지는 대구 팔공산 갓바위.
산행과 기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나름 최적의 여행지랄까.

이렇게 금요일 여행 계획을 잡고 나니, 어떻게 알았는지 나머지 산악회 멤버에게서 연락이 왔다.
해가기 전에 한 번 만나자고.
그리하여 팔공산 갓바위 오르기라는 당일치기 계획이,
순식간에 첫째날은 등산, 둘째날은 대구 도심여행이라는 1박2일 여행이 돼버리고 말았다.

대구여행 첫째날. 
9시 20분 동대구행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10시 50분.
미리 약속되어 있던 던킨도너츠에 들어가서 할라피뇨소시지머핀 세트를 시키고 기다리고 있으니, 선이 도착.
할라피뇨소시지는 선이 평소 엄청 칭찬하기에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닿아 먹어보니 소시지의 짭짤한 맛이 정말 내 입에도 딱이었다.

아점을 먹고, 동대구역에서 401번 버스를 타고 팔공산으로 가니, 눈이 내린 흔적이 보였다.
따뜻한 남쪽 출신인 내가 본 올 겨울 첫 눈이었다.
사실 처음 동대구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춥네, 내복을 입고 오길 잘했다'였다.
근데 선이 '오늘 안춥지? 날씨 따뜻하다' 했을 때, 나 사실 뜨악했다, 흐흐.

갓바위로 가는 길은, 계단, 계단, 계단의 연속이었다. 올라가면서 숨도 깔딱깔딱했지만, 점점 급경사가 되는 것이 눈 앞이 아찔했다. 
난 두어 번인가 쉬어가자고 청했는데, 평소 선은 이 길을 한 번에 쭈욱 올라간다고 했다.
헉, 알고 보니 대단한 체력녀였어.
나도 그런 체력을 갖추고 말테다, 아자~


(하늘이 보이는 저 곳에 갓바위 부처님이 계신다.)

올해 두번째 뵙는 갓바위 부처님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계셨다. 평생 1개의 소원을 이뤄주신다해서 일단 내 최대 소원을 빌었는데, 사실 108배할 때는 하나의 소원을 살짝 더 빌었다.
초를 켤 때 자꾸 불이 꺼져서, 선의 초에서 불을 빌렸는데(원래는 이러면 안된다고 한다), 이때 부처님이 우리 소원 합쳐서 이뤄주시겠지라고 했던 선의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훈훈해지는게, 정말 간절하게 부처님이 우리 둘의 소원을 다 이뤄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바람 속에서 108배까지 마치고 내려오니 3시.
허기에 진 선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우리는 서문시장에 칼제비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옛날에 한 번 가자 했었는데 시간을 맞추지 못해 가지 못했던 곳을 이번에 가기로 한거다.
서문시장의 칼제비는 서문시장에만 있는 명물이라고 한다. 칼국수와 수제비를 동시에 먹고 싶은 사람의 바람을 들어주는 음식으로 마치 통영의 우짜 같았다.
선의 단골인 이모네 수제비 가게에서 칼제비를 먹는데, 흑흑 ㅠㅠ 따뜻한 국물에 눈물이 절로 났다.
거기다 가격도 너무너무 착했다.^o^

 

칼제비 한 그릇 먹고 후르륵 먹고 나니 배가 불러, 서문시장의 나머지 명물은 내일을 기약하며 집으로 향했다.

불금의 마지막은 암만 뭐라해도 술, 거기에 치킨이면 금상첨화지.
역시 이 치킨도 평소 선이 자랑했던 치킨인데 정말 자랑할 만했다.
나 또한 이렇게 바싹하고 이렇게 매운 치킨은 처음 먹어봤는데. 매워서 속은 화닥화닥, 눈물은 줄줄인데,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먹고 싶어 생각만으로 침이 고인다.

치맥으로 첫째날 일정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내일을 기약하며 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대구의 도심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