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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다이안 세터필드의 『열세번째 이야기』

열세 번째 이야기 - 10점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비채

클립튼 박사가 왔다. 그는 청진기를 대어보고 이것저것 물었다.
"불면증이 있습니까? 수면 시간이 불규칙합니까? 악몽을 꿉니까?"
나는 고개를 세 번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는 체온계를 건네며 내게 혀 밑에 넣으라고 한 뒤 일어서서 창가로 걸어갔다. 그는 내게 등을 돌린 채로 물었다.
"무슨 책을 읽고 있나요?"
체온계를 입에 문 채로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폭풍의 언덕》을 읽으셨나요?"
"으흠."
"《제인 에어》는요?"
"으흠."
"《지성과 감성》은요?"
"으흠."
그는 돌아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한 번 이상 읽으셨겠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읽고, 또 읽고, 여러 번 읽었나요?"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얼굴의 주름은 더욱 깊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읽었겠지요?"
나는 그의 질문이 황당했지만 그의 심각한 표정에 주눅이 들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는 체온계를 내 입에서 꺼내 팔 사이에 낀 다음, 진단을 내렸다.
"당신은 낭만적인 공상을 즐기는 여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실신, 피로감, 식욕부진, 의욕부진 같은 증상이 있지요. 우비도 입지 않고 겨울비를 맞으며 돌아다니는 것도 병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더 심각한 원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좋아하는 소설 속의 여주인공들과는 달리, 과거에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이런 증상들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지는 않을 겁니다. 결핵도 없고, 소아마비도 아니고, 위생 상태가 불결한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곧 괜찮아질 겁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
"처방은 간단합니다. 잘 먹고, 잘 쉬고, 그리고 이걸 드세요."
그가 진료용 차트에 무언가를 급히 쓰더니 그것을 내 침대 맡에 놓았다.
...
그는 문 앞에서 내게 인사를 한 뒤 돌아서서 나갔다.
나는 그의 처방을 읽어보았다. 힘 있는 필체로 그는 이렇게 적었다.

《아서 코난 도일 소설집》《셜록 홈즈 시리즈》
하루에 두 번, 열 페이지씩.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


꺄르르르
의사 선생님의 처방전이 정말 킹왕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