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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같은 시대, 다른 삶,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삶

"오후에는 집에 있었다. 3시 20분쯤 예쁘장하게 생긴 여학생이 찾아왔다. 그녀는 조선인민협회 명의의 서한을 내밀면서 조선독립을 위해 자금을 대달라고 요구했다. 난 나 자신과 내 가족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만큼 돈을 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독립운동가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조선에 잠입하지 못하면서, 내게는 생명을 담보로 해서 자기들에게 돈을 대라고 요구하는 게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한을 챙겨서 가버렸다."
-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p.52)

*만세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1919년 9월 12일 윤치호가 쓴 일기


나라의 운명은 조금도 더 나아진 것이 없는 듯했다. 친정도 시가도 양쪽 집안은 거의 몰락하다시시피 되어 있었다. 양가 일찍 솔가하여 만주벌판에서 오로지 항일투쟁에만 매달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
그때 친일한 사람들의 후손들은 호의호식하며 좋은 학교에서 최신식 공부도 많이 했더라. 그들은 일본·미국 등에서 외국유학도 하는 특권을 많이 누리고, 그러니 그들은 훌륭하게 성공할 수밖에. 그러나 우리같이 쫓겨다니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위기를 넘긴 사람들은 자손들의 교육 같은 것 생각지도 못했다. 오로지 어른들의 독립투쟁, 그것만이 직접 보고 배운 산 교육이었다. 목숨을 항상 내놓고 다녔으니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깝다. 애 어른 없이 그 허허벌판 황야에 묻힌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데…… 볼모지에 잡초처럼 살았지.
- 서중석의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pp.390~391)

*이상룡의 손자며느리인 허은이 쓴 글

역사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식민시대와 같이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 나서서 독립운동을 하지 못할 것 같으면,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돈이라도 대 주라고.

대한민국에서 2008년을 살면서,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돈이 최고는 아니겠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걸 늦은 나이에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더불어 쥐뿔같은 내 담력으로는 앞에 나서는 일 따위는 못할 것 같으니, 행동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뒤에서 돈이나 대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이왕 돈대는 거 돈 걱정없게 많이 대자고.

이렇게 하여 부자가 되는 게 나의 목표가 되긴 했는데, 난 가진 재주도 없고, 돈 버는 능력은 더 없어서, 사실 자신이 좀 없다.
아마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몇백배는 더 애를 써야 할 것 같은데...

새해를 맞이하여, 열심히 노력해서 정직하게 벌 수 있는 만큼 벌고,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으자고, 그리고 그 돈을 내 뜻을 위해서 쓰자는 결심을 해본다.

부끄럼없는 부자가 되자.
아자, 아자, 아자~
난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