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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네 이름은 이강유

채운국 이야기 16 - 8점
유키노 사이 지음/서울문화사(만화)

16권은 강유의 이야기군요.

이강유(李絳攸)

이부시랑, 수재이지만 엄청난 방향치라는 결점을 가진, 지독하게 방약무인한 명문 홍가의 당주이자 악명높은 이부상서 홍여심의 양자.

강유는 한 겨울에 산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아이였는데, 나무에 묶여서는 산제물이라 떠나면 안된다는 아이를 여심이 발견하고는 데려와요. 성도 모르고 단지 강이라는 자기 이름 밖에 모르던 아이였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강유는 아직 어렸어요. 밭에 버려진 갓난아이였고, 데려다 길러준 양부모님도 나쁜 사람에게 살해당해, 강유는 이곳저곳 팔려 다니다 제일 마지막에는 산신에게 바쳐지는 산제물이 된거였거던요.

사실 양부모님은 강유를 강이 아니라 광(光-일본어에서 강이랑 광이 코우로 발음이 같데요.^^)이라고 불렀어요. 인생의 말년에 행복이라는 행운을 가져다 준 빛의 아이라고 말이죠. 이 이야기를 들은 나쁜 놈이 행운의 아이라는 말을 재물을 가져다주는 아이라고 생각해서는 양부모님을 죽이고 강유를 데려가서 판 거였어요.ㅠㅠ

강을 거둔 홍여심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건 우리 형님, 우리 형님이 최고, 내겐 오직 형님뿐이야를 외치고 다니는 브라더 콤플렉스가 심한 사람인데, 진짜 무시무시할 정도로 머리는 비상하지만 그와 대비되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감정을 나누는 거에는 그야말로 백치와 다름없는 바보같은 괴짜 천재예요. 이런 여심을 이해하는 사람은 형님인 소가와 부인인 백합 정도뿐이죠.

하여튼 소가형님이 아이를 주워 와서 키우기에, 나도 대충 아무나 주워다 키워서 형님의 고생을 맛보려 했다고 강유의 입양 이유를 스스럼없이 말하는 양부 홍여심은 진짜 제대로 된 제멋대로 성격인데요, 천상천하유아독존, 오만불손, 악랄비열에 극악무도, 이 사람에게 걸리면 인생 종치는 거야라는 평을 듣는 인물이죠.

하지만 강유는 자기를 데려와서 키워주는 여심을 진짜로 좋아해요. 아니 강유에게 여심은 절대적 존재지요. 그렇지만 여심은 강유에게 따뜻한 성격이 아니에요. 아니요, 참 차가워요. 원래 성격이 그렇거든요. 강유 마음을 다 알면서도, 말도, 태도도 냉정해요. 강유는 여심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은데, 여심은 흥 그런 건 꿈도 꾸지마라는 듯 행동해요. 그래서 오랜 시간 강유가 참 상처를 많이 받아요.ㅠㅠ

거기다 강유의 이름마저 이강유죠. 홍강유가 아니고 말이에요. 양아버지의 성은 홍씨인데, 자기에게는 왜 아무 관련없는 이씨성을 준건지 강유는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요. 거기다 옆의 사람들마저 수군대며 강유의 상처를 들쑤시죠. 홍여심에게 달리 아이가 있는 게 아닌데도 강유에게 홍씨성을 주지 않은 것은 강유를 후계자로 보고 있지 않다고, 홍가로 맞이할 의사가 없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강유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설움에 많이 울어요.ㅠㅠ

왜 여심은 강유에게 홍씨성을 주지 않는 걸까요? 왜, 왜?

이름 때문에 고민하는 강유에게 이강유라는 이름의 의미를 알려주는 건, 여심의 형님이 소가예요.
알고 봤더니, 여심은 자기가 홍씨여서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했더군요. 진저리나는 홍가에서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벗어나지 못했고, 게다가 당주까지 돼버려서 더욱 홍씨성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되었다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명문의 홍씨성을 아주아주 싫어해요.

그래서 강유에게 홍씨성을 주지 않은 거랍니다. 자기가 싫어하는 홍씨성을 강유에게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거죠. 만일 강유에게 홍씨성을 주면 강유도 홍가에 메이게 될테고, 그럼 자유가 없어질 거라고 말이에요. 그렇다고 홍씨성을 아주 무시한 것도 아니에요. 강유가 기억하고 있던 이름인 강에 자신의 성이자 홍가의 상징인 붉은색을 넣어둔답니다.

강(絳), 진홍 강. 붉을 홍(紅)보다 더 진한 진홍. 넌 홍가의 아이라는 흔적을 이렇게 남겨줘요. 그리고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본뜬 유(攸)는 흐르는 물처럼 자유롭게 살아라는 의미이고, 성인 이(李)는 추위와 더위에 강하고 어디에서나 뿌리를 내리고, 꽃도 열매도 뿌리도 약용이 되고, 눈 같은 꽃을 피우는 근성있다고 여심이 가장 좋아하는 자두나무.

사실 강유는 잊고 있었지만, 처음에 이강유라는 이름을 듣고 울면서 양모인 백합한테 물어봐요. 왜 자기에게 홍씨성을 주지 않은 건지? 자기가 쓸모없고 부족한 아이라서 그런게 아닌지? 그때 백합이 이렇게 말해요. 그런 거 절대 아니라고.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하죠.

“강유라... 좋은 이름이야. 성 따위보다 강이라는 이름을 남기는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야.”

“네...? 어째서요...?”

“언젠가 누군가가 널 위해 붙여진 이름이니까. 소중히 할 가치가 있단다. 네게 어울리는 이름이야. 한자를 모른다는게 안타깝긴 하지만."


강유에게 있어 양부모님이 지어준 소중히 할 가치가 있는 강이라는 이름에 자신의 성인 홍의 의미를 더해주는 이 센스. 그것도 홍보다 더 붉은 진홍, 마치 쪽 풀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강유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떠올리게 만드는 이 감각.
천재 여심의 회심작 같은 이름, 이강유. 진짜 진짜 좋아요. >.<

사실 여심은 강유를 대할 때 늘 퉁명스럽거든요. 강유를 사랑하지만 그 표를 안내요. 그래서 여심의 사랑을 기대하는 강유는 늘 상처를 받아요.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는 표를 내주면 좋을텐데, 책을 읽으면서 전 이런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말이죠. 여심의 사랑은 강유의 이름에 모두 다 들어있었던 거예요. 이강유라는 이름에 넌 홍여심의 사랑하는 아이란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커다오, 라는 소망을 다 담은 거죠. 모두에게 불리는 이름에 말이예요.
이름이 불릴 때마다, 강유에게는 여심의 간절한 바람이 쌓였겠죠. 언령의 힘이라는 것이 있으니깐 말이예요.

“강유, 여심은 네가 갖고 있던 이름을 그대로 남기고 새로운 이름을 지었단다. 아무것도 변할 필요 없고, 아무것도 할 필요없어. 넌 가진게 이름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우린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없어. 네가 와줘서 이 집이 밝아졌어. 네 미소는 마치 햇살과도 같아.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돼. 웃으며 살면 돼. 그것만 약속해주면 나머진 네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면 되는 거야.”


제 의견을 솔직히 말하면 여심이 툭 까놓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네 이름은 이러이러한 의미에서 이렇게 지었다라고요. 그러면 강유는 좋아서 까무러치겠죠. 행복해서 함박 웃을테고요. 그렇지만 여심은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거에요. 좋고 싫고를 확실히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니깐요. 하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게끔, 이름에 나와 있으니깐 괜찮아요.^^

의심할 것도 없이 여심은 강유를 사랑해요. 그 사실이 절 웃음 짓게 해요. 마음을 따스하게 해요. 많은 일에 무관심한 이 오만불손한 남자가 강유의 이름을 짓는다고 한밤중에 사전을 뒤적여가며 획수점까지 봐가며 낑낑대는 모습을 상상하면 말이예요, 눈물 머금은 웃음이 날 것 같아요.

유아독존 홍여심이 나이차가 얼마 나지도 않는 아이를 키우며, 온 소망을 담아,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도하죠. 갈 곳 없던 아이에게 있을 곳을 마련해주고 돌아올 곳도 마련해주죠. 자신의 안위보다 아이의 안위를 먼저 걱정해요.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하죠. 이게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가요? 전 이 기적같은 일에 마음이 설레고 좋아요. 눈에 보이는 사랑이면 좋죠. 그렇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사랑도 좋아요. 보이지 않는다 해서 그 크기가 작은 것이 아님을 아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