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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미안해 케인즈, 널 보고 클라이브를 떠올려서

모리스 - 6점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열린책들

케인즈가 낡은 관습이나 규칙에 고분고분 따르는 허약한 모범생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이튼과 킹즈 칼리지 시절 내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욱 위험시되던 동성연애를 깊이 탐닉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고분고분한 예절 교육과 종교 행사에 대해서도 불경스러운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p.278,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경제사상사 책을 읽다, 이 한구절에 그만 의식은 E.M.포스터 『모리스』에게로 날아가 버렸다. 모리스는 영국 중산층의 한 젊은이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휴 그랜트가 모리스의 첫사랑인 클라이브를 연기한 영화도 있다.

왜 갑자기 모리스가 떠올랐을까?
그렇다, 난 케인즈를 보면서, 클라이브를 떠올렸던 거다.
순진한 신입생 모리스를 유혹한 선배 클라이브
모리스를 사랑의 번뇌에 빠뜨려 놓고는,
나중에 우리 사랑은 잘못된 거야, 난 올바른 길을 가겠어, 라고 말하며,
모리스를 버리고 여자와 결혼하는 클라이브.

그 당시 스캔들 메이커였던 아름다운 발레리나와 결혼하는 케인즈를 보니,
왜 이리도 클라이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지...

아마 이 책의 시대 배경과 케인즈가 살았던 시대가 거의 같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금기시되던 동성애에 대한 탐닉도, 고분고분한 예절 교육과 종교 행사에 대한 불경스러운 불평도, 모두가 모리스의 한 배경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이 셋이 다녔던 학교도 케임브리지대학이다.

책의 내용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그 당시 동성애는 사형감이었다.
그래서 클라이브가 모리스에게 경고하기도 한다. 교수형 당하기 전에 동성애를 그만두라고.
케인즈가 만일 동성애로 인해 교수형 혹은 사회적 매장을 당했다면,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 모습은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