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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경주여행 - 석굴암

여행날짜 : 2013.9.6.

석굴암에는 한 쌍의 금강역사상이 있다. 얼굴 생김새나 자세, 옷차림 등이 데칼코마니처럼 좌우 대칭인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입모양이 살짝 다르다. 본존상 방향에서 오른쪽 역사는 입을 벌리고 있고, 왼쪽 역사는 굳게 다물고 있다.

금강역사상의 입모양은 '철통수호'를 의미한다. 입을 벌린 쪽은 '아금강', 다문 쪽은 '훔금강'이라고 해서 알파와 오메가처럼 시작과 끝을 아우르고 있음을 상징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빠짐없이 지킨다는 뜻을 읽을 수 있다.


앗, 이럴수가.

하나도 놓치지 싶지 않아 그렇게 주의를 기울였는데, 종내는 놓치고 말았네, 아이고~


석굴암에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가고 싶어했으나,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

친구와 경주여행을 계획하면서 이번에는 꼭 가보고 말리라 결심했더랬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권)』를 비롯하여 석굴암에 대해 소개해놓은 책들을 빌려 읽으며 석굴암에 대해 공부하고, 혹시 현장에 가서는 봐야 할 것을 놓칠 수도 있다는 노파심에 내가 봐야 할 것들을 숫자까지 매겨 가며, 하나하나 따로 메모까지 했다.

내가 공부한 석굴암은 경이 그 자체였다. 와우, 신라인들의 과학 기술력은 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였기에, 이렇게 완벽하게 위대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도면으로 하나하나 살펴 본 신라인들의 수리 세계는 수학 까막눈인 내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만큼 세심한 것이었고, 그것을 현실로 구현해낸 석굴암은 기가 막힐 정도로 엄정한 것이었다.




나는 기대했다, 엄청나게. 

그러나 실제 내가 본 석굴암은...

왜 유홍준 교수는 우리 시대의 석굴암을 목굴암이라고 표현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조전실을 옹호하는 글도 읽어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 난 그 답답한 목조전실이 너무 싫었다.
석굴암은 굴이다. 그러면 적어도 내가 굴안으로, 알 수 없는 미지의 세상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진짜 이게 뭔가.T^T
멀리서 보이는 목조전실의 외관도 마치 속이 더부룩한 모양새이고, 실제 석굴암으로 들어가보니 내가 정토의 세상으로 발디디고 있다는 경건함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유리속에 갇힌 부처님과 부처님을 따르는 여러 제자와 보살님, 불법의 수호신들도 답답해 보이기는 마찬가지. 
이 분들도 나처럼 답답하시겠지?

가 글자로, 사진으로, 모형으로 봤던 그 위대한 석굴암은, 그 신비스럽고 우아한 느낌이 반절이 깎여나간채 그 자리에 있었다.
정말 보수공사를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 정녕 다른, 더 괜찮은 대안은 없었던 것일까?

그리하여 나를 분노케 했던 건, 입장료 4,000원.
비쌌다.
그 문화재의 위대함에 비하면 값싸지만, 보고 싶은 것도 못보게 막아놓고 받는 값치고는 비쌌다. 내가 제일 보고 싶었던 완벽의 유일한 흠이지만, 그것마저도 흠같지 않은, 세 갈래로 깨진 연화무늬의 천장덮개돌도 못봤는데...T^T


같이 간 친구랑 입장료가 비싼 이유는 에어컨을 돌리기 위해서라고 비아냥거리며 나와놓고는, 결론은 앞서 말한 아금강과 훔금강도 제대로 안보고 나온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순간 난 자신이 한심해 미칠 뻔했다. 어쩌면 이다지도 아둔하냐, 이렇게 원통할 수가 없다.T.T

석굴암을 처음 봤을 때의 실망이 내 눈을 흐리게 해, 결국은 뒤늦은 후회를 낳았다. 아니 공부가 부족했던 것도 있다. 좀 더 제대로 공부했으면 잘 살펴보고 나왔을텐데...
그것만이 아니라 감로수도 안마시고 왔다. 친구랑 둘이 나중에 아차 했지만, 이미 흘러간 물이요, 쏘아버린 화살.

내 불찰로 인한 나의 아쉬움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우리 후손은 시멘트와 유리벽이 제거된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한 석굴암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석굴암에 앞서 들렀던 신라역사과학관의 학예사 선생님은 이대로 가다간, 에어컨의 진동 때문에 석굴암은 언젠가 무너질거라고 학자들이 말한다고 했다.

1,000년을 넘게 버텨 온 이 위대한 굴이, 우리 손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 켠이 무거워졌다. 우리 세대와 우리 바로 앞 세대는 실패했지만, 우리 뒷 세대는 이 위대한 굴이 무너지지 않게 지켜낼 수 있을까? 부디 우리 후손이 이 멋진 건축물을 지켜낼 수 있기를 빌고 또 빈다.

김대성이 불국사는 현생의 부모님을 위해서, 석굴암은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지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래서 난 전생의 부모님이 김대성이 환생하기 전인 모량리의 부모님을 말하는 건줄 알았는데, 이번에 공부를 하면서 그게 아니고, 왕족 출신의 진골 귀족인 김대성이 석굴암 창건 당시 왕인 경덕왕 앞의 왕들을 위해 지은 건축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말을 듣고 '오, 과연'이라고 느낀 건 이 정도의 건축물이면, 비용이며, 들인 인력이 장난이 아닐텐데, 그걸 아무리 개인이 부자라도 쉽게 감당할 수는 없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고로 이건 태종무열왕계 김씨왕조의 왕권강화를 위한 국가적 사업이었단 말로 결론지으려고 했더니, 그것만도 아니었나 싶은 게 내가 가진 역사책을 펼치니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경덕왕 때에는 동시에 귀족층의 반발로 보수로 돌아가는 모습이 다시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경덕왕 10년(751)에 2천 칸이 넘는 거대한 불국사를 짓는데 국가가 후원한 것이나, 16년(757)에 관료전을 폐지하고 녹읍을 부활한 것이 그것이다.


불국사를 짓는데 국가가 후원했으니, 석굴암을 짓는데도 마찬가지였던걸까? 정말 김대성이라는 한 귀족이 개인적 이유로 짓는 건축물이었는데 귀족의 힘이 강해지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후원했던걸까?

근데 어쩌면 경덕왕은 흔들리는 전제왕권 속에서 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이 건축물을 짓는데 힘을 보태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이 곧 부처인 세상, 동해를 바라보며 왜구의 침입을 주시하고 있는 부처님은, 조상의 은혜를 빌어 흔들리는 내 권위는 내가 지킨다는 왕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형상물이 아니었을까.

신라역사과학관
개인이 사재를 털어 만든 과학기술사 박물관.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번 버스를 타고 가다 민속공예촌에서 내리면 된다.
석굴암에 가기 전에 꼭 먼저 들르기를 추천하는 곳이다.
학예사 선생님의 상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고,
실제 석굴암에서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간다면, 실제 석굴암은 안가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바이다.(먼 산)

 

석굴암통일대종
전망대로서는 최고일 것 같은데,
이 곳에 들어가려면 천원을 내고 종을 쳐야 한다.
소원성취를 바라며 한 번 쳐보고 싶었는데...
우천시 타.종.불.가

 

석굴암으로 가는 길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번 버스 타고 GoGo
민속공예촌에서 내려 신라역사과학관에 들렀다가 다시 10번 버스 타고 GoGo
불국사에서 내려,
거기서 12번 버스 타고 GoGo
산길로 걸어올라갈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비가 와서 걷기 보다는 버스 타는 걸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