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전한 정신/밑줄긋기

전환시대의 논리

전환시대의 논리

지은이. 리영희

창비

2010(2판 8쇄)


권력과 언론


  월남전쟁 비밀문서 보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분쟁은 위에서 훑어본 바와 같이 많은 교훈을 내외에 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귀중한 교훈이다. 『뉴욕타임즈』와 엘즈버그의 행동은 미국국민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의 통치자들과 국민 일반, 특히 지식인에게 다음과 같은 효과를 이룩한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정부의 독선과 비밀주의는 국민 전반의 성격과 지식을 변칙적일 만큼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독선과 비밀주의는 본래 사회를 위해서 이용될 수 있을 국민의 정력과 능력의 광범한 해방을 저해한다. 또 모든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있을 때 당연한 결과로서 다수의 욕구·견해·필요·복지가 버림을 받는다. 이 두가지 결과는 사회의 손실일 수밖에 없다.

  둘째, 소수의 권력자나 정책수립자들의 비밀주의의 결과는 또 그 세력자 내지 지배계급(층)과 국민대중과의 대립을 초래하고 만다. 그들은 터무니없는 우월감에 사로잡히게 되어 국민과 유리되며 마침내는 권위만을 강요하는 것으로 만사는 해결된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미국정부와 지난 몇해 동안에 일어나고 있는 미국사회의 분해현상과 국민의 저항으로 입증되었다. 소수 집권세력의 이와같은 권위는 반드시 국민으로 하여금 회의를 갖게 하여 그에 대한 집권자의 반응이 탄압일수록 회의는 번지고 심화한다. 결과는 미국에서처럼 집권세력의 권위의 분쇄로 끝을 맺는다.

  셋째, 소수 권력자들의 자유 억압정책은 국민에게 운명적인 열등감을 갖게 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억압속에서 자라고 살아온 인민은 민주주의의 두개의 기둥인 질서와 지성을 가지고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욕망도 상실해버린다. 말하자면 구실과 명분이야 어떻든 실질적으로는 소수자의 체면·이익·권위·안전만이 주안인 그런 정치와 체제는 인민에게서 주체성과 책임감을 박탈해버린다. 이 현상은 후진사회일수록 그 위험성이 크다.

  끝으로 이와 같은 통치세력과 피치(被治)대중 사이의 모순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도 입증되었다. 산속 굴에 들어가서 '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소리도 그 소리가 모이면, 몰랐던 사람에게도 진실이 알려질 뿐 아니라 언젠가는 맞대놓고 '임금은 벗었다'고 말하는 많은 소년이 나오는 법이기 때문이다.(pp.46~47)